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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Statement
한국의 대표 단색화 작가인 윤형근은 검은 먹빛의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으로 전통 서화와 수묵화에서 느끼는 멋을 자신만의 작품 세계에 담아낸 인물이다.
1928년 충북 청주 출생인 그는 6남 2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20세기 초 개화기에 덕망 있는 선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경성의전 출신의 조부 윤태현과 경성고보 출신의 문인 화가였던 아버지 윤용한의 영향을 받아 정신적으로 충만한 유년기를 보냈다.
올곧은 ‘선비정신’을 교육받은 윤형근은 역사의식이 깊고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예술가 이전에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의인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역사적 혼란의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그는 1947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국립대학교설립안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류 조치 후 제적당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학창 시절의 시위 전력으로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당할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기도 하였으며, 전쟁 중 피란을 가지 않고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1956년에는 6개월 간 서대문형무소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1973년에는 부정 입학 비리를 따져 물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 가기도 했다. 그는 총 3번의 복역 이후, 그의 나이 만 45세에 비로소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195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윤형근은 당시 교수로 있었던 김환기 화백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김환기는 윤형근의 작품 세계 구축에 있어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었고, 1960년에는 김환기의 장녀인 김영숙과 결혼을 하면서 스승과 제자이자 장인과 사위 관계가 되었다. 작업 초기에는 김환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1973년 반공법 위반이라는 누명을 쓰고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온 이후부터 작품에서 색채가 사라지고 ‘검은’ 색의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내 그림이 1973년부터 확 달라졌다. 서대문교도소에서 나와 홧김에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전에는 색을 썼었는데 색채가 싫어졌고 화려한 것이 싫어 그림이 검어진 것이지. 욕을 하면서 독기를 뿜어낸 것이지. 그림에 살아온 것이 배인 거야.” – 윤형근 일기 중에서
이후 80-90년대에 본격적으로 스스로 ‘천지문(天地門)’ 이라 명명했던 시리즈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더욱 간결해진 형태와 색채로 한국 단색화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는 생전 상파울루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 등 영향력 있는 국제 행사 및 전시에 다수 초청되었고, 2018년에는 단색화 작가 최초로 그에게 헌정된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되었다.
* 참고자료 : 국립현대미술관, 아트부산, 오마이뉴스 화려한 색이 싫어졌다는 화가, '독기' 밴 그림들
* 사진출처 : ⓒYun Seong-ryeol. -
Professional Experiences
2020 PKM 갤러리, 서울, 한국
2020 데이비드 즈워너, 뉴욕, 미국
2019 포르투니 미술관, 베니스, 이탈리아
2018 사이먼 리 갤러리, 런던, 영국
2018 윤형근 1928-200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
2017 Yun Hyong-keun, Oil on Hanji 1973 - 1989, PKM 갤러리, 서울
2017 데이비드 즈워너, 뉴욕, 미국
2016 사이먼 리 갤러리, 런던, 영국
2016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 앤트워프, 벨기에
2015 블럼앤포 갤러리, 뉴욕, 미국
2015 갤러리 야마구치, 오사카, 일본
2015 PKM 갤러리, 서울, 한국
2007 Silent Poetry, Wellside 갤러리, 서울
2006 갤러리 장 브롤리, 파리, 프랑스
2003 박여숙 화랑, 서울
2003 갤러리 실라, 대구
2002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스트라스부르, 프랑스
2002 갤러리 장 브롤리, 파리, 프랑스
2002 조현 갤러리, 부산
2002 갤러리 인, 서울
2001 선재미술관, 경주
2001 비비 갤러리, 대전
2001 갤러리 야마구치, 오사카
1999 조현 갤러리, 부산
1999 갤러리 신라, 대구
1999 료 갤러리, 서울
1997 구상미술재단, 로이틀링겐, 독일
1996 <윤형근전>, 갤러리현대, 서울, 한국
1994 예인 갤러리, 마산
1994 토탈미술관, 서울
1994 Chinati 재단, 마르파, 미국
1994 갤러리 박, 서울
1993 Donald Judd 재단, 뉴욕
1993 Locks 갤러리, 필라델피아
1991 인공갤러리, 서울
1991 갤러리 휴마니떼, 나고야
1991 갤러리 야마구찌, 오사카
1991 스즈카와갤러리, 히로시마
1990 우에다갤러리, 도쿄
1989 인공갤러리, 서울
1989 갤러리 휴마니떼, 나고야
1989 갤러리 야마구찌, 오사카
1989 스즈카와갤러리, 히로시마
1987 수화랑, 서울
1987 인공갤러리, 대구
1987 이넥스갤러리, 오사카
1982 관훈미술관, 서울
1981 Association Villa Corot 25 Ateliers, 파리
1980 관훈미술관, 서울
1978 도쿄갤러리, 도쿄
1977 공간화랑, 서울
1977 서울화랑, 서울
1976 무라마쓰갤러리, 도쿄
1975 문헌화랑, 서울 (~76)
1973 명동화랑, 서울 (~74)
1966 신문회관, 서울
* 출처 : 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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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194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중퇴 (~49)
1955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57)
청주상업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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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d
1978년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큐레이터 노트
윤형근은 한국 단색화의 거목으로 알려진 작가 중 한 명으로, 같은 단색화 계열 작가 중에서도 사회적 참여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 특징적이다.
윤형근은 1966년 첫 개인전을 서울 신문회관 화랑에서 열었다. 이 시기의 작품은 그의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 화백의 영향을 받아 푸른색이 지배적이며, 특유의 서정적이고 풍부한 감성이 드러난다. 김환기를 부모처럼 섬기며 평생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존경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던 윤형근은 이후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구축하였다.
윤형근의 일대기를 보면 그는 사회 참여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던 작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늘 올곧은 이야기를 했던 그는 유신체제가 한창이던 1973년,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던 숙명여고에서 부정 입학 비리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다녀오기도 하였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현재 우리가 익숙한 윤형근의 작품으로 화풍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또한, 1980년 ‘광주’의 전말을 듣고 격노하며 그곳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시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을 그리며 시대의 아픔을 담담히 그림으로 담아냈다.
이후 80-90년대에 이르면서 본격적으로 윤형근의 대표작인 ‘천지문(天地門)’ 시리즈가 등장한다. 그는 하늘의 색인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어 ‘오묘한 검정색’을 나타냈는데, 이를 ‘청다색(Blue-Umber)’이라고 명명했다. 윤형근은 이를 ‘속이 타들어 가는’ 울분의 색채라고 설명하며 분노와 저항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형태와 색채, 과정과 결과가 더욱 간결해지며 이전보다 더 대담하면서도 수수한 미학의 결정체를 보여준다.
70~80년대 단색화 작가들은 종종 사회적 현실을 외면했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윤형근은 단색화 장르의 어떤 화가보다도 적극적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냈고, 추상화라는 장르를 한계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유로서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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